본문 바로가기
일상/PKU (학부)

북경대/싸강일기 - 몰아쓰는 한달치 "개강" 일기

by Hexagon_ 2020. 3. 12.
1.

2020년 1월 26일, 그니까 중국에서 한창 코로나가 창궐하고 한국은 아직 잠잠할때.

개강 연기 소식이 들려왔다.

폭풍의 전야.

곧 펑요우췐이 들썩였다. "세상에 그럼 학기 배정을 뭐 어쩌겠단거야?"

설마 국경절에 남들 7일 쉴때 9일 휴가 만들어줄 정도로 대인배인 북경대가 개강을 연기해서 5.1절 휴가와 여름방학을 잡아먹는 잔인무도한 짓을 할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던 와중,

개강은 예정대로 하되,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폭풍의 서막.


2.

새내기때도 수업 어디서 어떻게 듣는지 몰라서 이렇게 난리친적은 없었다.

교내 커뮤니티와 펑요우췐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온라인? 어떻게? 무슨 프로그램으로? 수강신청은? 청강은? 출첵도 함? 교재는? 과제는? 시험은?...

 

이런 사상 초유의 사태에 학생들도 안절부절인데,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교수들과 수업 관련 업무를 모조리 도맡아야 하는 조교들은 오죽할까.

 

 

무엇보다 학생들의 제일 큰 불만은, "수업 진행 방식"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학교측에선 기본적으로

  • 교학망(教学网/course)을 활용한 Classin 생방송,
  • PPT, 동영상 등 형식의 녹화방송,
  • MOOC 플랫폼,
  • 위챗 단톡방 등을 활용한 토의 수업,
  • 디쉐러우 강의동에서 생방송.

5가지나 되는 수업 방식을 권장했는데,

사실상 강제성이 없다보니 이에 더해 알아서 교재 읽고 논문 쓰라는 교수가 대놓고 잠수타는 수업, Zoom 같은 일반 화상 회의 플랫폼을 이용하는 수업,  Bilibili에 수업 녹화본을 올리는 수업(네?) 등 별의별 기상천외한 수업 방식들이 있었다.

 

나는 그나마 다행이도 교학망 Classin, 腾讯会议, 녹화방송 정도로 정리가 되었으나

주변에는 한 수업당 프로그램 하나씩 설치한 친구도 있는듯.

 

 

청강도 큰 문제였다.

타 학과 수업은 개강 1주 후에 수강신청이 가능한 북대 특성상 커리큘럼에 타 학과 전공수업 요구가 굉장히 많은 인문사회계열 학생에게 첫주 청강은 거의 필수인데,

그냥 교실 가서 자리에 앉으면 끝인 오프라인과는 다르게, 수강신청을 해야만 교학망에 뜨는 온라인 강의는 청강이 매우 복잡했다.

 

수업 단톡방에 들어가든, 어찌저찌해서 담당 조교의 연락처를 알아내든,

조교와 연락해서 자신의 학번 정보를 해당 수업의 교학망 시스템에 수동으로 등록해달라고 해야한다.

문제는 수강신청 마감 전까지는 매일 자정에 수동 등록한 정보가 초기화되서,

수업하기 전마다 조교가 수동으로 한땀한땀 입력해줘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북대 조교 대학원 선배님들 존경합니다.

 


3.

그래서 개강 하고나서는 혼돈의 사태가 진정되었냐고? 즈언혀.

 

대망의 개강일 2월 17일.

중국시간 10시(3교시)에 들어야할 수업이 있어서 컴퓨터를 켜고 교학망에 들어갔는데

 

^_^

예상대로 서버가 터져버렸다.

F5를 연타해 간신히 서버가 복구된 틈을 타 들어가졌다 해도 교수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랴.

비유를 하자면 전교생이 순식간에 같은 강의실로 몰려들어오는 바람에 비좁은 교실 입구가 인파로 막혀버린셈.

간신히 비집고 들어와도 문제는 수업을 진행할 교수가 밖에 갇혀있다는거.

 

수업 단톡방은 난리가 났고, 교수+조교+학생들이 3종세트로 30분을 우왕좌왕하다 서버가 회복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자 결국 腾讯会议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안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한 점심즈음에 서버가 회복되었고,

그날 오후수업부터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아주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다.

 

근데 서버와는 별개로 교학망 자체는 여전히 그지같다. 무슨 2000년대 말기에 만든 웹사이트같이 생겨서 쓰기 겁나게 불편함.

알림도 꼭 읽어야만 사라지고 (강박증 말기 환자가 아니니 망정이지),

숙제 내는 기능도 뭔 티스토리 에디터 구버전같이 생겼고.

 


 

4.

교수님들 학생들한테 웹캠 켜라 하시는걸 너무 좋아하신다.

"학생들의 얼굴이 보여야 수업하는 분위기가 난다"나 뭐라나.

공감은 가지만 카메라를 켜면 "머리 안감아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라는 인강의 메리트가 사라지지 않습니까 교수님.

 

전공수업중에 거의 반협박식(구라 아니고, 수업 전에 카메라 안 킨 사람 이름 부르면서까지 카메라에 집착하신다. 이쯤되면 얼굴 성애자.)으로 카메라를 켜라는 교수가 한분 계시는데,

휴우. 오프라인 수업이었어도 여러모로 빡세게 구셨을듯.

 

무엇보다 Classin 요녀석, 리소스 드럽게 많이 잡아먹는다.

특히 학생들 대부분이 카메라를 켜면 더더욱. 옆에서 열심히 필기를 담당하는 원노트가 픽 하고 꺼질 정도.

이걸 핑계로 아이패드 질러버릴까.

 


5.

살아생전 학교가 이정도로 가고싶을줄이야.

 

미명호 꽃구경 가고싶다

우쓰에서 달리기 하고싶다

찡위엔 풀밭에서 뒹굴거리고 싶다

마라샹궈 먹고싶다

샤오바이팡 고기 팍팍 넣은 도시락 먹고싶다

지퉤이판 먹고싶다

창춘위엔 차사오판 먹고싶다

이위엔 양꼬치 먹고싶다

이디엔디엔 러러차 시차 마시고싶다

서문 밖에 튜브피자 먹고싶다.

 

결국 결론은 먹는거.

 

John나게 그립다 흑흑.

6.

근데 인간은 확실히 적응의 동물인가보다.

 

개강 한달 차. 처음에는 진짜 차라리 방학 내내 기숙사에 있었으면 싶을 정도로

기말고사 끝나고 바로 한국 들어온게 후회될정도로 학교가 미칠듯이 그리웠는데,

지금은 그냥 여차저차 컴퓨터로 수업 듣는게 습관이 되버렸다.

어쩌면 정상 개강하고 교실에서 수업 듣는게 더 어색하게 느껴질듯.

 

장점도 있다. 개인적으로 어디 딱 앉아있는걸 못해서 과제 쓸때마다 장소를 3번씩은 옮기는데,

집에 있으니 식탁 아니면 방 책상 아니면 침대 위다.

평소에 30분씩은 걸리는 장소 선정이 이젠 3초로 획기적이게 줄어든 셈.

 

제일 불만인거 꼽아보라면 딱 한가지.

집에 겨울옷밖에 없어서 날씨 풀리면 외출을 못한다(...)

이거만 해결되면 완벽할텐데.

댓글